일상과 리뷰/다녀온 곳들에 대한 단상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 예술의 전당 전시

sity den 2022. 5. 23. 06:18

 

2022년 5월 15일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를 보고왔다. 그는 영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이자 1세대 작가로 붓칠의 기술보다 작품 속 작가의 철학과 의도를 강조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전시 포스터를 보면 팝아트를 연상할 수 있지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본인의 작품이 팝아트가 아니라고 말한다. 과감한 색과 미니멀한 라인은 그저 작품을 강조한 시각적인 효과일 뿐이다. 



전시 기간 
2022년 04월 08일 (금) - 2022년 08월 28일 (일) 

전시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티켓: 성인 기준 20,000원

주말 도슨트는 운영하지 않으니 참고하시길 바라고, 나는 평일 12시쯤 전시를 관람했는데 사람이 꽤 있었지만 전시장 자체가 넓어서 혼잡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님들이 많았다. 

전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원화 작품전이며, 1970년대 초기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82세 작가의 예술인생을 총망라한 회고전이라고 한다. 페인팅, 설치, 디지털,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장르의 150여 점을 공개했다. 


영국의 미술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은 이번 전시를 보지 않았으면 아마도 평생 몰랐을 작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작가이지만, YBAS (Young British Artists, YBAs)의 대표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하여 YBAs의 스승인 명망높은 미술가이다. 


처음엔 '개념 미술의 선구자' 라는 표현이 생소하고 와닿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을 아는 것인지 전시는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한 구절을 인용한다. 내가 그를 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되듯,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흔하고 친숙한 오브제를 선과 색으로 변화시키고 사물의 본래 의미를 지운다.

그리고 의미가 지워진 사물에 새로운 작가적 의도를 부여한다.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물체의 이름은 그저 교육과 사회화에 의해 약속된 언어일 뿐 보는 이의 기억, 경험, 창의력을 통해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식의 개념미술인 것이다. 


참나무 (An Oak Tree 1973)

개념미술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 작품인 참나무이다. 아시아 최초 전시라고 하고, 사진을 찍지 못하는 작품이었다. 스케일이 다른 것들에 비해 매우 작고, 시야에 와닿지 않는 작품이라 직접 봤을 당시에는 빨리 다른 작품이 보고 싶어 대충 훑어보고 지나쳤는데, 알고보니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작품의 구성은 매우 간단하다. 선반 위에 올려진 물 한 잔과 인터뷰 형식의 대화가 적혀있는 종이 한 장이 작품의 전부이다. 대화가 적혀 있는 종이는 이 선반 위의 물 한 잔이 왜 오크 나무라고 불리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치 데미안 허스트가 수조 속에 죽은 상어 한 마리를 담아놓고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도 비슷한 모습이다. 선반 위의 물 한 잔은 그저 물 한 잔일 뿐이지만, 그것을 오크나무라고 부르며 미술가가 만들어놓은 생각과 개념에 따라 완전하게 변하는 개념미술을 설명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한 잔의 물을 따르며 '이 것은 오크 나무다.' 라고 생각한 주체의 의도가 한 잔의 물을 오크나무로 만들었다는 설명은 마치 현대 개념 미술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느낌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추상적인 단어와 연관없는 피사체들을 한 캔버스에 담는다.
그 이유는 이러한 단어들이 늘 신선하고 특별한 추억들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림 속 색채와 단어가 관람자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고, 궁극적으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알파벳 페인팅 작업을 통해 사색, 상상력, 그리고 아트적 놀이를 위한 원천을 만들고자 했다. 


날렵한 세로 판형의 오브제를 강조한 작품들이 내가 가장 좋았던 작품들이었다.

'프레임의 길이에 따라 가장자리의 모습이 변할 수 있도록 오브제의 일부분을 강조하고 패널 중심에 오브제를 맞추지 않았다. 작가는 이것을 클로즈업이라고 하기보다는 '경계'라 부르는데, 관람자들이 보이지 않는 부분을 스스로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또 일부분만 보고도 어떤 물건인지 알아볼 수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결국 작품에서 제외된 오브제의 모습을 관람자들이 직접 상상해야 하며, 이를 위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딱 필요한 만큼만 축약해서 보여준다.' 

보통 설명을 들어야 작품의 의도를 알 수 있는 것을 싫어했는데,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은 작품을 보고 어떤 의도로 이렇게 표현한 것인지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해서 신기했다. 

오른쪽의 9개의 패널로 구성된 작품은, 마이클 크레이그 식 유머를 담고 있다. 12사도 같은 고전회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여러개의 이미지를 하나의 세트로 만드려고 했다고 한다. 마치 위대한 인물 여러명을 위풍당당하게 세워 놓은 것처럼 구성했지만, 평범하고 흔한 물건들을 모아 패러디 했다고 한다. 


볼 것도 읽을 것도 많은 오랜만에 흥미롭고 좋다고 생각하는 전시이다. 특히 굿즈들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냉장고 자석이랑 안경닦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의 엽서를 구매했다. 

도슨트를 들으며 감상해도 좋을 것 같고, 차은우님의 오디오 도슨트가 준비되어 있으니 (어플을 다운받고 구매해야 한다. 가격은 2000원 정도) 이 것을 들으면서 조용히 사색하며 들으면 좋을 것 같은 전시였다. 

무엇보다 요즘 날씨도 너무 좋고 내부를 산책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부 공터에 앉아 음식을 먹고 쉬며 햇볕을 쬐는 풍경이 너무 오랜만이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