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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을까?

sity den 2020. 5. 21. 23:59

강남 거리는 왜 걷기 싫을까?

걷고 싶은 거리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먼저 걷고 싶은 거리와 성공적인 거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즉 자동차와 사람을 합친 유동인구가 많고 부동산 가치가 높은 거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강남의 테헤란로는 성공적인 거리이기는 하지만, 걷고 싶은 거리는 아니라고 평가된다. 반면 명동 같은 거리는 성공적인 거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걷고 싶은 거리이기도 하다. 걷고 싶은 거리는 대부분 성공적인 거리지만, 성공적인 거리라고 해서 반드시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휴먼 스케일의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휴먼 스케일

: 특정한 사물이 사람에게 주는 크기의 감각을 의미하며 공간의 종류에 상관없이 인간은 공간 척도의 기준이 되므로 인체의 크기에 맞춰 공간의 모든 요소가 결정된다.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디자이너는 신축 건물이나 리모델링을 하는 건물 모두 실내외 공간과 건축적인 패턴, 사용자 행위의 내용이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휴먼 스케일은 최종적으로 공간의 위계라는 각기 다른 공간사용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 어느 것도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이유로 인하여 다채로운 동적 공간을 연출하게 된다. 성공적이지만 걷고 싶지 않은 거리들은 대부분 휴먼 스케일 수준에서의 체험이 다양하게 제공되지 못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거리는 대부분 압도적인 스케일로서 상징성을 가지는 거리이다. 

 

 

 

경험의 밀도가 가장 높은 명동 거리

 

 

 

휴먼스케일이 압도적인 테헤란 로

 

 

걷는다는 행위는 평균 시속 4킬로미터로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이 보행 속도는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느끼는 경험과는 사뭇 다른 체험이다. 따라서 과연 보행 속도에 맞추어서 체험하는 변화의 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수준인가를 정량화해 볼 필요가 있다. 휴먼 스케일의 체험이란 가로수의 크기, 인도의 폭, 평행해서 가는 차도의 폭, 거리에 늘어선 점포의 종류, 보행자가 걸으면서 마주치는 거리 위의 출입구 빈도수 등이 있다.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보행자들이 거리를 걷게 되면 거리를 따라서 상점들과 건물의 입구가 나타나게 된다. 상점의 입구를 지나게 될 때 보행자는 가게에 들어가거나 혹은 계속해서 길을 걷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거리에 상점의 출입구 숫자가 많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우리는 매일 눈을 뜨고, 일어나고, 먹고, 걷고, 이야기하고, 일하고, 쉬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매 순간 결정하는 각각의 행위들은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서 그 사람의 삶 혹은 세상을 결정한다. 의사 결정이 모여서 그 사람의 그날의 세상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살 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도적 선택권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것 보다는 자신이 선택해서 만들어 가는 것을 선호한다.

 

만약 보행자가 선택권이 없는 길을 걷는다면 이는 마치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tv처럼, 수동적이고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출입구를 통한 선택권들이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면 그 거리는 보행자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자기 주도적인 삶의 체험을 제공해 주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이벤트 밀도는 그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체험과 삶의 주도권을 제공할 수 있는 가를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행자의 체험으로 보았을 때 명동 거리와 가로수 길이 2.5초당 채널이 바뀐다면 테헤란로는 11초당 채널이 바뀌는 tv에 비유될 수 있다. 

 

얼마나 자주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느냐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자기주도적인 삶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고 우연성이 넘친다는 것은 우리가 도시에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리가 더 많을수록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형 문화 상업 복합 시설을 만들더라도 거리와 접한 면에는 작은 소규모 가게들이 많이 배치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확실히 강남을 간다면 누군가를 만나 놀러가는 것 보다는 무언가를 사러 가거나, 병원같은 일정으로 가게 된다. 친구를 만나 카페를 가고 거리를 구경하고 하루를 재밌게 보내고 싶을 때 골목골목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는 연남동이나 성수동을 찾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합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거리

종로구를 갔을 때 스케일이 큰 회사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바로 옆 인사동이나 안국역 근처 골목들에 카페거리도 형성되어 있다. 인사동에 있는 복합 문화공간 안녕 인사동 또한 출입구를 다양하게 배치해 내부와 외부를 최대한 연결하려는 시도가 돋보였고, 주변 거리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종로구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형 문화 상업 복합 시설을 만들더라도 거리와 접한 면에는 작은 소규모 가게들이 많이 배치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 는 설명에 맞는 장소가 아닐까 싶었다.

 

 

참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 지음